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과 2028 대입제도 개편은 단순히 내신 등급과 수능 표준점수의 구조만 바꾸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입시에서 ‘점수’가 중심에 있었다면, 앞으로는 학생부라는 텍스트와 그 속에 담긴 서사가 중심이 되는 구조로 옮겨가고 있다. 대학은 여전히 내신과 수능을 활용하지만 그 숫자만으로는 학생을 가려내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고, 이 공백을 채우는 수단이 바로 학생부 정성평가, 제시문 기반 면접, 수행평가와 독서·진로활동 기록이다.
2028학년도 입시부터는 고교학점제가 전면 적용되고, 내신은 9등급제가 아닌 5등급제·성취도 병기 체제로 바뀐다. 또 수능에서는 국어·수학·탐구 영역에서 과목 선택 구조가 폐지되고, 통합형 공통 과목 중심 평가로 돌아가는 방향이 확정되었다.
과거에는 선택과목 조합에 따라 대학별 환산점수와 유·불리가 컸기 때문에 수능이 사실상 가장 강력한 변별 수단이었으나, 공통과목 중심 수능과 5등급 내신 체제에서는 같은 점수대에서 학생들을 촘촘하게 구분하기가 어렵다. 특히 탐구가 통합사회·통합과학 중심으로 단순화되고, 수학에서도 선택 심화과목이 일부 대학 지정용 보조 지표로 활용되는 수준에 머문다면 표면적인 점수만으로 이공계 상위권의 학업 역량을 정밀하게 판별하는 데에는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대학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은 분명하다. 숫자의 분별력이 떨어질수록 텍스트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다. 이미 상위 15개 대학을 중심으로 2028 대입에서 학생부 정성평가를 강화하는 설계가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고,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 자료에서도 학생부 제공 항목 확대와 수행평가 정보의 세분화가 예고되어 있다. 이는 단순히 “학종 비중이 늘어난다”는 수준이 아니라, 교과 성적 옆에 붙어 있는 성취도와 수행평가명, 과목 선택 맥락, 진로선택과목 이수 이력 등 텍스트 정보가 실제 평가 과정에서 훨씬 더 적극적으로 사용된다는 뜻에 가깝다.
서연고를 비롯한 최상위권 대학의 경우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전형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학생부종합전형을 통해 다년간 서류평가와 면접·구술고사를 운영해왔고, 각 대학 나름의 평가 프레임과 채점 기준이 상당히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대학들에게 2028 개편은 “새로운 제도를 처음 도입하는 사건”이라기보다, 그동안 해오던 정성평가의 비중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과정에 가깝다. 수능 선택과목 폐지로 정시에서의 변별력이 일부 약화된다면, 이 역시 대학별 고사나 서류 반영, 교과 외 활동 평가를 일부 결합하는 방향으로 보완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정시에서도 학생부 확인 서류를 추가적으로 활용하는 논의가 꾸준히 이어져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2028 이후에는 “수능 점수만으로 가는 정시”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 수 있다.
문제는 지방 소재 의과대학과 다수의 지방 사립대학이다. 일부 대학, 예를 들어 의예과만큼은 학생부종합 중심으로 꾸준히 선발해 온 한림대처럼 학종 설계와 서류평가 노하우를 가진 곳들도 있다. 그러나 많은 지방 사립대는 지금까지 교과전형과 수능 최저 조합으로 학생을 선발해 왔고, 학생부 정성평가 경험은 매우 제한적이다. 내신 5등급제와 수능 구조 개편으로 숫자 중심의 변별력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이 대학들이 단기간에 서류평가와 면접 중심의 학종형 전형으로 전환한다면 평가의 일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갑작스러운 서류 반영 비율 확대, 면접 비중 강화는 의도와 달리 ‘예상 밖의 합격·불합격’ 사례를 양산하며, 특정 학교·지역·프로그램에 편중된 결과를 낳을 위험도 있다. 여기에 지방 학생들의 수능 성취도 하락 추세와 의대 정원 확대 문제까지 겹치면 지역인재 의대 전형의 내신 커트라인은 지금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서울 주요 대학에서 제시문 기반 면접이 본격적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크다. 현재는 서연고 일부 전형과 몇몇 의·과학계열 전형을 제외하면, 서울권 대학에서 제시문 면접을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학교는 많지 않다. 그러나 내신과 수능에서의 변별력 약화가 분명해질수록 대학은 학업역량을 직접 묻는 도구로 제시문 면접과 대학별고사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통합사회·통합과학, 공통 수학 중심 수능은 이공계 심화역량을 정밀하게 가려내기 어렵기 때문에 자연계 상위권 학과일수록 전공적합성과 사고력을 확인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해진다. 이때 제시문 면접의 난이도는 지금의 논술시험에 준하거나, 이를 변형한 형식으로 설계될 가능성이 있다. 수시뿐 아니라 정시에서도 일정 비율의 서류평가와 제시문 기반 구술고사를 병행하는 시나리오는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이러한 구조 변화 속에서 “내신과 수능만 잘하면 된다”는 과거식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서울 주요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한다면, 내신 대비에 모든 에너지를 쏟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전히 교과 성적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경쟁이 성립하지 않는다. 수행평가, 프로젝트형 수업, 진로탐구 보고서, 동아리·연구활동, 진로집중학기 등 학생부에 기록으로 남는 모든 활동이 향후 입시에서 실제 평가 자료가 된다. 고교학점제 하에서는 어떤 과목을 언제, 어떤 이유로 수강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수행평가와 탐구를 수행했는지가 함께 제공되기 때문에, “어떤 서사를 만들 것인가”가 내신 등급 못지않게 중요한 전략 요소가 된다.
여기서 독서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독서는 점수로 바로 환산되지 않는다. 모의고사 성적표에도, 내신 성적표에도 독서량과 독서의 질은 숫자로 표시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학부모와 학생이 눈에 보이는 수학·과학 지필 점수에만 집중하고, 독서와 글쓰기는 시간이 남을 때 하는 ‘부산물’ 정도로 취급한다. 하지만 실제 대입 준비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보고서·에세이·발표 자료 작성이다. 수행평가 보고서를 쓰는 데 시간이 지나치게 오래 걸리거나, 주제가 조금만 깊어지면 자료를 찾고 구조를 잡는 것에서부터 막히는 경우가 많다. 배경지식이 부족하고,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구조화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독서는 이 문제를 근본에서 해결해 준다. 진로와 직접 연결된 전공 서적만이 아니라, 철학·사회·과학 교양서, 인문학적 시각을 확장시켜 주는 책들을 꾸준히 읽고 메모·정리·요약하는 습관은 수행평가, 학생부 세부능력특기사항, 자기소개서, 면접 답변의 질을 동시에 끌어올린다. 제시문 면접에서 요구하는 것도 결국 ‘처음 보는 글을 제한된 시간 안에 이해하고,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능력’이다. 이는 문제풀이 스킬만으로는 길러지지 않는다. 읽고 쓰는 훈련, 즉 텍스트를 다루는 능력의 축적이 필요하다. 수능 국어와 언어·논리 영역 성취도, 나아가 대학 입학 후 전공 텍스트를 소화하는 능력도 결국 같은 축 위에서 형성된다.
학부모의 인식 전환도 요구된다. 수학과 과학 점수를 눈에 보이는 성과로 여기고, 독서와 글쓰기에 투자하는 시간을 ‘손해’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강하다. 그러나 2028 대입 체제에서는 그 판단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수행평가와 프로젝트형 수업의 비중이 커지고, 학생부에는 수행평가명과 반영비율까지 대학에 제공된다.
형식적으로 제출한 보고서, 깊이 없는 발표는 그대로 학생의 학업역량과 태도를 드러내는 자료가 된다. 반대로 깊이 있는 독서를 바탕으로 한 탐구보고서와 토론 경험은 학생부의 여러 항목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면서 대학이 찾는 ‘텍스트 기반 역량’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결국 2028 대입은 숫자에서 텍스트로의 대전환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내신 등급과 수능 점수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입시 결과가 결정되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학생부에 남는 한 줄의 기록, 수행평가 보고서 한 편, 제시문 면접에서 주어진 텍스트를 읽고 말하는 능력이 과거의 한 문제, 한 점수만큼의 무게를 갖게 된다. 고교 선택, 과목 선택, 활동 선택의 기준 역시 “어디서 몇 등급을 받을 수 있는가”에서 “어떤 경험과 텍스트를 쌓을 수 있는가”로 옮겨갈 필요가 있다.
지금 중학생과 고1이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내신과 수능 중심의 공부를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 위에 텍스트 역량을 체계적으로 쌓는 장기 전략을 더하라는 것이다. 꾸준한 독서, 탐구보고서 작성 경험, 진로 관련 활동을 통한 자기 서사의 축적, 수업 속 수행평가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2028 이후 입시의 핵심 경쟁력이 된다. 숫자를 넘어 텍스트가 말하는 시대, 입시는 점수표가 아니라 학생부라는 “이야기”를 통해 학생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윤한울 MEDISKY LAB 대표이사
의치한수 SKY 진로맞춤형 학종 설계 전문가
- 연세대학교 졸업
- 現 MEDISKY LAB 대표
- 現 강남구청 인강 입시설명회 강사
- 前 이투스 / 비상에듀 / 비타에듀 인터넷강사
- 前 대치 시대인재 / 대치 이강 / 대치 아토즈 논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