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시를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내신 등급과 수능 성적, 영어 성적 같은 수치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실제로 대학이 학생을 선발할 때 들여다보는 것은 점수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시간과 선택이 축적된 기록, 즉 학생부이다. 그리고 이 학생부를 읽는 과정은 결국 하나의 텍스트를 해석하는 과정이다. 무엇을 했는지의 나열만으로는 설득력이 약하다. 왜 그 활동을 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확장했는지가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될 때 비로소 대학이 이해할 수 있는 “텍스트로서의 학생부”가 된다. 이 지점에서 인문학과 문해력의 역할이 입시의 핵심으로 들어오게 된다.
학생부는 활동의 목록이 아니라 서사의 구조를 가진다. 같은 동아리, 같은 대회, 같은 봉사활동을 해도 어떤 학생은 “했습니다” 수준에서 끝나는 반면, 어떤 학생은 그 경험을 통해 문제를 발견하고, 개념을 다시 공부하고, 다른 분야와 연결하며, 다음 선택으로 이어가면서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낸다. 전자는 일지이고, 후자는 텍스트이다. 왜 이 활동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동기, 과정에서 부딪힌 한계와 이를 이해하기 위한 추가 탐구, 그리고 그 결과가 이후 과목 선택과 진로 탐색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인과관계를 구조화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글쓰기 기술”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 지식의 흐름을 다루는 인문학적 사고에서 비롯된다. 텍스트를 읽고 핵심을 정리하고,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고, 하나의 관점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연습이 쌓여 있을수록 학생부의 기록도 자연스럽게 서사성을 갖게 된다.
인문학의 또 다른 역할은 시야를 넓히는 데 있다. 수학, 과학, 코딩 같은 것들을 좋아하는 학생일수록 “전공 관련 활동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대학이 찾는 것은 단순한 단일 기능자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 그 전공의 의미를 성찰하고 새로운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 문학, 철학, 역사, 사회과학을 꾸준히 접한 학생은 같은 실험을 하더라도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예를 들어 환경공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 생태학 책만 읽은 경우와, 도시사·정치경제서·환경윤리 관련 인문학 도서를 함께 읽은 경우를 비교하면, 후자는 미세먼지 문제를 단순한 기술적 해결 과제가 아니라 도시 구조, 정책 결정, 산업 구조, 세대 간 정의의 문제로까지 확장해 바라볼 수 있다. 이러한 넓은 시야가 곧 “유니크한 학생부”를 만든다. 활동 자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 활동을 해석하고 연결하는 프레임이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기록의 밀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문해력과 해석력, 판단력 또한 인문학을 기반으로 형성된다. 현재 수능 국어는 더 이상 단순한 어휘, 문법, 독해 속도를 재는 시험이 아니다. 과학 지문, 경제 지문, 철학 지문, 법률 지문 등이 복합적으로 출제되며, 텍스트의 구조를 파악하고, 필자의 논리 전개를 따라가며,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전제를 추론해야 한다. 여기에는 단편적인 스킬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다. 다양한 분야의 텍스트를 접해 본 경험, 특히 인문학적 텍스트를 통해 논증 구조를 읽고, 개념의 정의를 구분하며, 주장과 근거를 구별해 온 경험이 필요하다. 실제로 텍스트를 끝까지 읽지 못하는 학생들 상당수는 단순히 글을 “읽는 속도”가 느린 것이 아니라, 배경지식과 맥락 이해가 부족하여 문장 사이의 연결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세계관과 개념 체계가 빈약하면 글의 한 문장 한 문장은 읽어도 전체 구조는 잡히지 않는다. 인문학 독서는 이 빈 공간을 채워준다.
문해력 부족은 곧 판단력 부족으로 이어진다. 수능 국어뿐 아니라 학교 수행평가, 논술, 면접에서도 문제의 핵심이 “주어진 텍스트를 어떻게 읽고 해석하는가”에 있다. 의학이나 공학 계열을 희망하는 학생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의료윤리, 기술과 인간, 데이터와 프라이버시 같은 주제는 대부분 인문학적 텍스트로 제시되며, 이를 읽고 자신의 생각을 요구한다. 이때 단순한 감상이나 도덕 교과서식 답변이 아니라, 개념과 원칙을 근거로 찬반을 정리하고, 사례를 엮어 논리를 구축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힘은 시험 대비용 요약집에서 나오지 않는다. 찬반이 명확히 나뉘지 않는 인문학적 주제들을 놓고 토론하고, 에세이를 써 보고, 고전과 현대 텍스트를 넘나들며 스스로 기준을 세워 보는 과정에서 축적된다.
학생부의 분량 제한 또한 인문학과 문해력의 중요성을 더욱 크게 만든다. 최근 학생부 기재 분량은 계속 줄어드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편되고 있다. 활동은 많지만 쓸 수 있는 글자 수는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 어떤 표현으로 압축할지에 따라 학생부의 인상이 크게 달라진다. 같은 활동을 두고도 어떤 학생은 “~에 참여함” 정도로 끝내고, 다른 학생은 “어떤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어떤 시도를 했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깨닫고 이후 어떤 선택으로 이어졌는지”를 4~5줄 안에 압축해 담아낸다. 이는 단순한 요약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구조화하고 핵심을 선별하는 사고력의 문제이다. 논설문을 쓰고, 책을 요약하고, 토론 내용을 정리해 보는 인문학적 글쓰기 연습은 바로 이 힘을 길러준다.
자기소개서가 폐지된 상황에서는 학생부 기록의 의미가 더 커졌다. 예전에는 학생부에 다 담지 못한 서사를 자기소개서에서 보완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제한된 학생부 기록 안에서 모든 서사가 표현되어야 한다. 분량 제한이 강해질수록 개별 문장의 밀도와 방향성이 중요해진다. 활동의 사실을 나열하는 문장보다, 그 활동의 의미를 한 문장으로 압축해 제시하는 표현이 더 큰 힘을 갖는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텍스트를 읽고 요지와 논지를 파악해 보는 인문학적 훈련이다. 남의 글을 읽으며 “이 글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 문단은 전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따져본 학생만이 자신의 경험을 기록할 때도 핵심과 주변부를 나눌 수 있다.
결국 입시는 점수 경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텍스트 경쟁이다. 대학은 학생부와 면접, 때로는 논술과 과제를 통해 “이 학생이 어떤 텍스트를 읽어왔고, 그 텍스트를 어떻게 소화해 자신의 언어와 선택으로 바꾸어 왔는가”를 보고자 한다. 인문학은 단지 인문계열 지원자를 위한 전공 준비가 아니라, 모든 계열의 학생이 자신의 학생부를 하나의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 가기 위한 기반이다. 문해력은 수능 국어 점수만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복잡한 사회에서 정보와 의견을 구분하고 자신의 길을 판단하는 힘이다. 입시 전략을 고민한다면 과목 선택, 학원, 문제집만이 아니라, 학생이 어떤 텍스트를 읽고 어떤 인문학적 질문을 품으며 성장하고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긴 안목에서 보았을 때, 인문학과 문해력에 대한 투자는 입시라는 단기 목표를 넘어, 이후 대학과 사회에서의 선택을 지탱해 줄 가장 안정적인 기반이기 때문이다.

▶윤한울 MEDISKY LAB 대표이사
의치한수 SKY 진로맞춤형 학종 설계 전문가
- 연세대학교 졸업
- 現 MEDISKY LAB 대표
- 現 강남구청 인강 입시설명회 강사
- 前 이투스 / 비상에듀 / 비타에듀 인터넷강사
- 前 대치 시대인재 / 대치 이강 / 대치 아토즈 논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