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 첫 서리가 내리고, 아침 공기가 유난히 차가워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누구에게는 축제이고 누구에게는 고통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녀석이 찾아온다. 매년 돌아오지만, 매번 새롭다. 시험이란 게 늘 그렇다. 경험해 본 사람은 다시 하고 싶지 않고, 아직 안 해본 사람은 괜히 긴장되고 무섭고 또 설렌다. 교실은 조용한데 공기는 묘하게 무겁다. 학생들은 말이 줄고, 선생님들은 말을 아낀다. ‘진짜 수능이구나.’ 하는 말 속에 체념과 결의가 엉켜 있다.
이 모든 긴장과 결의 속에 한가지는 분명하다. 수능은 완전한 개인전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따뜻한 응원과 조언도 시험 문제를 대신 풀어주지 않는다. 잔인하지만, 그래서 의미가 있다. 하루동안 치르는 시험이지만, 그 하루를 위해 쌓은 시간이 자그만치 3년이다. “이제 하루만 버티면 된다.”는 식의 다짐은 스스로에게 위안은 주겠지만, 도움은 되지 않는다. 수능은 버티는 날이 아니라, 그 동안의 나를 세상에 드러내는 날이다. 수능의 가장 큰 적은 불안이나 모르는 문제가 아니다. 바로 자기 마음을 방치하는 태도다. 수능은 흘러가는 게 아니라 붙잡는 것이다. 마음이 깨어 있어야 몸도 따라온다.
수능 전날 수능을 위해 컨디션 조절을 하라고 한다. 컨디션 관리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의 리듬을 유지하는 일이다. 올림픽 선수는 경기 전날과 당일에도 몸을 푼다. 가볍게 달리고, 스트레칭을 하고, 머릿속으로 경기를 그린다. 완전히 쉬어버리면 몸이 식고 감이 둔해진다.
올림픽 대표선수와 수험생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뇌는 근육보다 훨씬 예민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잠에서 깨어난 뇌가 완전히 활성화되기까지는 수초에서 수분이 걸린다고 한다. 깨어난 직후엔 집중력이 완전하지 않다. 시험 당일 아침, 눈을 뜨면 몸을 움직여라. 창문을 열고, 물을 마시고, 스트레칭을 하며 뇌를 깨워라.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새로운 문제를 풀기보다, 오늘 시험 일정, 어제까지 공부한 내용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라. 쉬되 멈추지 마라. 그게 진짜 컨디션 관리다.
시험장에 들어가면 모두가 긴장한다. 하지만 그 긴장은 적이 아니다. 적당한 긴장은 집중을 만든다. 문제는 그 긴장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긴장을 피하려 하지 말고, 즐겨라. 시험 중에는 잠들지 않는게 중요하다. 잠들면 너의 뇌는 수능 문제보다 오직 너의 숙면에만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졸리면 자세를 바꾸고 손가락을 움직여라. “조금만 눈 붙이자.”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미 집중력은 날아간 거다. 시험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마지막 문제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는 사람이 진짜 실력자이다.
그리고 시험이 끝난 뒤에는 자신을 비난하지 말고 위로해라. 결과보다 중요한 건, 오늘 네가 끝까지 최선을 다했는냐는 것이다. 수능은 인생을 결정짓는 시험은 아니다. 수능 잘 봤다고 행복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부모님께, 선생님께, 가족에게 그동안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인사해라. 그런 인사를 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결과와 상관없이 이미 품격있고 행복한 인생을 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증거다.
수능 당일 아침은 생각보다 춥겠지만, 시험장의 교문을 지나가는 너의 발걸음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힘찰 것이다. 수많은 불안과 역경 속에서도 여기까지 버텨온 너는 이미 대단하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면,
“고생했다. 긴장하지 말고, 즐기시길.”
▶ 김동진 인천 동산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