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종 생각한다.
“지금의 학생들은 훗날 고등학교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제자들이 오랜 세월이 지나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이렇게 말했으면 좋겠다.
“우리 학교에는 헌신적인 선생님이 계셨고, 함께 웃고 경쟁하며 성장한 친구들이 있었다”고.
춘‧추계 체육대회, 거마 음악 축제, 삼겹살 데이, 42.195km 향토 순례, 야간 자기주도학습, 기숙사 생활, 그리고 학교 밖 체험학습까지, 그 추억들이 인생의 후반부에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간”으로 남는다면, 그 자체로 학교의 존재 이유가 될 것이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곳이 아니다. 학생이 몸과 마음을 성장시키는 공간이며, 인생의 방향을 찾아가는 무대다. 그 무대에는 배움과 도전, 그리고 따뜻한 추억이 함께 담겨야 한다.
○ 지역을 배우는 교육이 지방고의 힘이다
지방고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지역사회와 연결된 교육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를 ‘지역 기반 교육과정’이라 부른다. 우리 학교는 지역 문인 김철수·신석정·이매창을 탐구하고, 동학농민운동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 학습을 진행한다. 또 ‘마실길 따라 변산바다로’ 향토 순례를 통해 학생들이 직접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도록 한다. 독거노인을 찾아가 말벗이 되는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봉사나 체험이 아니라, ‘삶과 배움이 이어지는 교육’이다.
실제 대입 서류 평가에서도 이런 지역 기반 활동은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난 대입에서 좋은 평가 점수보다 더 큰 의미를 본다. 학생이 자신이 사는 지역을 배우고, 스스로의 뿌리를 탐구하며, 그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기른다는 점이다. 종종 학생들에게 말한다. “네가 사는 곳을 알아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그 배움이 쌓이면, 언젠가 성인이 되어 다시 그 땅을 찾아 후배들에게 이야기하는 ‘교육의 순환’이 이루어진다.
○ 체험학습, 추억 위에 배움을 쌓다
이번 10월, 우리 학교는 고2 학생들과 함께 제주도 테마식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왔다. 요트 체험, 감귤 따기, 우도 방문, 서귀포 올레시장 체험까지, 모든 일정은 교사들이 직접 기획했다.
학생들은 시장 체험에서 부안 읍내 시장과 비교하며 서로의 강점과 차이를 분석했고, 그 내용을 ‘지역 발전 보고서’로 정리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체험 속 탐구가 이루어진 시간이었다. 필자는 체험학습을 단순한 ‘수학여행’이 아니라 ‘교육적 여정’으로 보고 싶다.
요즘 대도시에서는 수학여행을 불참하는 학생이 늘고 있지만, 함께 버스에 타고, 같은 하늘을 보고, 같은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은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는다. 가족과의 여행도 좋지만, 같은 또래 친구들과 스스로의 성장을 그려보는 시간은 더 값지다.
○ 스포츠로 배우는 ‘긴장과 이완’
필자는 요즘 헬스와 배드민턴, 걷기를 즐긴다. 그리고 KIA 타이거즈와 전북현대 팬이다. 운동은 내게 늘 ‘긴장과 이완’을 가르쳐 준다. 그런 이유로 학생들에게도 스포츠를 통한 경험을 권하고 싶다. 지난 5월, 학생 72명과 교사 7명이 광주 챔피언스필드에서 KIA 타이거즈 경기를 관람했다. 11월에는 전북현대와 대전의 축구 경기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함께 볼 예정이다. 희망 학생 52명과 교사 5명이 참여하며, 모든 비용은 무료다. 학생들은 선생님과 같은 공간에서 소리치며 응원하고, 함께 웃고 즐긴다. 토요일임에도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교사들의 모습에서 난 진심 어린 ‘교육의 온기’를 느낀다. 이런 활동이야말로 교사와 학생이 공감하고 성장하는 진짜 배움이다. 교육이 교실을 넘어 삶 속으로 확장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프로그램을 더 넓혀갈 수 있도록, 지방고에도 충분한 예산이 지원되길 간절히 바란다.
○ 지역이 살아야 학교도 산다
지방에는 명소가 많고, 음식과 사람의 정이 풍부하다. 학교가 적극적으로 지역과 연결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교육청이 예산을 넉넉히 지원한다면 학생들은 더 많은 체험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비용 부담이 줄어들면 참여의 폭도 넓어진다.
필자는 늘 이렇게 믿는다. “좋은 학교가 있는 곳에 좋은 지역이 자란다.” 서울과 수도권 중심의 사회 구조가 지역으로 균형 있게 분산될 때, 그 중심에는 언제나 명품 지방고가 있을 것이다. 학생이 행복하고, 교사가 헌신하며,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교육. 그것이 내가 꿈꾸는 학교의 모습이며, 백산고가 오늘도 그 길을 향해 걸어가는 이유다.
▶유석용 백산고등학교 교장
전) 서울진학지도협의회 회장
전) 전국진학진도협의회 수석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