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빛으로 생동감을 뽐내는 장미.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꽃을 뽑는 조사에서 줄곧 1위를 차지한 ‘꽃의 여왕’이지. 장미가 사랑받은 건 강렬한 색감 덕분이야.

꽃의 생명력을 캔버스에 고스란히 담아낸 화가가 있어. 1950년대부터 활동한 프랑스의 구상화 화가 미셸 앙리(1928~2016).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은 꽃에서 나온다”라며 꽃과 색에 진심이었던 그는 과감하고 강렬한 색채로 꽃을 표현한 꽃의 화가야.

꽃 그림에 숨겨놓은 앙리의 메시지를 찾고 싶다면? 12월 14일까지 모다 갤러리(서울 용산구)에서 열리는 ‘위대한 컬러리스트 미셸 앙리 : VIVID(비비드)’ 전시를 놓치지 마.

화가를 꿈꾸는 이다인 학생기자(서울선곡초 3)와 함께 앙리가 꽃으로 피워낸 세상으로 들어가 봤어.

미셸 앙리
미셸 앙리

 

빨간색, 나는 다르게 볼래

‘클로드 모네의 장미, 카미유 피사로의 장미(Les Roses Claude Monet, Les Roses Camille Pisarro)’
‘클로드 모네의 장미, 카미유 피사로의 장미(Les Roses Claude Monet, Les Roses Camille Pisarro)’

“우와~ 온통 새빨개요!”

검은 커튼을 걷고 전시장에 들어서자 다인 학생기자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어. 벽이 전부 붉은색인 공간에 붉은 물감으로 잔뜩 칠해진 그림들이 걸려있었거든. 빨간색에 빨간색에 또 빨간색이라니! 눈이 어질어질할 정도.

눈치 챘어? 많고 많은 색깔 중 앙리가 유독 좋아한 건 빨간색. 그가 활동했을 당시 미술계는 빨간색을 어두운 색으로 분류했어. 하지만 앙리는 그것을 편견(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라 여겼지. 빨간색을 얼마든지 밝게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어.

그의 그림 ‘클로드 모네의 장미, 카미유 피사로의 장미’를 볼까? 새빨간 벽 앞에 유리병들이 놓여있고, 병마다 또 붉은 꽃이 가득 담겼지? 유리병 주변에는 사과와 체리 같은 붉은 과일도 있어. 빨간색 천지!

이렇게 빨간색만 가득하면 단조로워 보일 법도 한데, 밝은 빨강과 어두운 빨강을 골고루

사용해 그림이 오히려 입체적으로 보여. 서로 다른 빨간색으로 칠해진 꽃은 마치 살아있는 듯해. 앙리가 빨간색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사랑, 생명, 환희가 그대로 느껴지지?

 

빨강과 파랑 세련되게 쓰는 법은?

‘파트리시오의 창가에서(Da la finestra de Patricio)’
‘파트리시오의 창가에서(Da la finestra de Patricio)’

다인 학생기자의 발걸음이 한 작품 앞에서 멈췄어. 빨간색 가득한 작품 사이 파란색 작품이 눈에 확 들어왔거든.

앙리는 빨간색만 사용한 건 아냐. 대표적인 예가 ‘파트리시오의 창가에서’. 창틀부터 창문 너머의 나무와 물결, 뒤편 성당까지 푸른색이야. 그 덕분에 창가에 놓인 붉은 꽃은 더 생생해 보이지?

앙리는 푸른색과 붉은색처럼 서로 대비되는 색을 과감하게 사용했어. 이런 조합은 서로를 강렬하게 만들어주는 탓에 자칫 촌스러워 보일 수 있어서 당시 화가들은 꺼렸어. 하지만 앙리는 이런 편견도 과감히 깼다는 말씀!

촌스럽긴커녕 세련돼 보이는 비결이 뭘까? 바로 섬세한 색 배치! 빨간 꽃다발 바로 옆에 진한 파란색이 오면 너무 극단적으로 대비되고 어색해 보이겠지? 이를 막기 위해 앙리는 꽃다발 주변 색을 영리하게 배치했어. 꽃다발 주변에 안개꽃의 흰색, 성당의 보라색, 나뭇잎의 초록색을 배치해 빨강과 파랑 사이에 자연스럽게 간격을 만든 거지.

홀린 듯 그림을 보던 지안 학생기자가 씩 웃으며 말했어. “색의 마술사, 맞네요!”

 

피고 지는 꽃이 전하는 메시지

‘센강, 에펠탑(La Seine, Tour Eiffel)’
‘센강, 에펠탑(La Seine, Tour Eiffel)’

앙리는 아름답지만 언젠가 시들 수밖에 없는 꽃의 특성에 주목했어. 그는 꽃이 지는 것을 슬프게만 여기지 않았지. 대신 꽃이 피어있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가 작품에 꽃을 계속해서 등장시킨 것도 이런 이유. 꽃이 활짝 핀 순간처럼 우리 인생도 매 순간이 아름다우니 순간에서 충분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는 것.

앙리가 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작품 ‘센 강, 에펠탑’을 볼까? 분홍색 꽃다발에서 퍼진 꽃잎이 강물과 하늘에 흩날리며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내. 마치 파리 전체에 꽃잎이 흩날리는 것만 같지.

꽃을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해 볼까? 꽃잎 하나하나가 진짜처럼 볼록 튀어나와 있어. 물감을 두껍게 듬뿍 발라 표현하는 ‘임파스토 기법’을 사용했어. 그가 그린 정물화에서 꽃은 단순히 그림을 구성하는 소재가 아니라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이끄는 존재인 거야.

 

현실에 상상력을 톡톡

‘베니스의 꽃(Fleur de Venise)’
‘베니스의 꽃(Fleur de Venise)’
‘코스모스(Cosmos)’
‘코스모스(Cosmos)’

앙리의 작품은 언뜻 현실을 그대로 표현한 것 같지만, 그의 상상력이 곁들여진 부분이 많아. 분홍 장미와 루피너스라는 꽃을 표현한 ‘베니스의 꽃’을 봐. 작품 속 장미가 우리가 아는 모습과 달리 암술과 수술이 훤히 드러나 있지? 심지어 꽃 아래로 길게 늘어진 잎은 장미가 아니라 난초의 잎!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 식물을 표현한 거야. 또 다른 그림 ‘코스모스’ 역시 제목과는 전혀 다른, 상상 속 꽃이야.

꽃 너머의 풍경을 표현할 때도 마찬가지. 에펠탑, 베네치아 성당 등 배경이 되는 장소를 그대로 묘사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려냈어. 그림 속 풍경이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구도인 것도 이 때문.

또 있어. 우리가 유리병에 꽃을 꽂을 땐 물을 꼭 채워두잖아? 하지만 앙리의 작품에선 유리병이 모두 텅텅 비었어! 물을 채우는 걸 깜박한 게 아니야. 그림 속 유리병에 물이 채워져있으면 병에 담긴 줄기가 왜곡돼 보이거나 유리병 뒤로 보이는 풍경이 흐려지겠지? 앙리는 이런 왜곡이 작품의 분위기를 해친다고 생각해 과감하게 물을 없앤 거지.

꽃의 순간을 통해 인생의 행복과 아름다움을 강조한 미셸 앙리의 작품처럼 미술은 자신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어떤 소재를 통해, 어떻게 표현할지가 중요하지.

다인 학생기자가 화가의 꿈을 이룬다면 어떤 그림을 그릴까? 곰곰이 생각에 잠기던 다인 학생기자가 말했어.

“저라면 붉은색 꽃 대신 주황색 오렌지를 그릴래요! 오렌지를 한입 베어 물면 상큼함이 퍼지는 것처럼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톡톡 튀는 에너지를 선물해주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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