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일본 애니메이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모두 정답!
하나의 공통점이 더 있지. 바로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이라는 것!
스튜디오 지브리는 스즈키 토시오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과 1985년에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 회사야. 도토리나무의 요정인 토토로, 금지된 신들의 세계로 간 치히로 같은 상상력 가득한 애니메이션들은 모두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탄생했지.
내년 2월 22일까지 대원뮤지엄(서울 용산구) 팝콘D스퀘어에서 스튜디오 지브리의 시작을 보여주는 ‘아니메쥬와 지브리展(전)’이 열려. 스튜디오 지브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했다면 절대 놓쳐선 안 될 전시.
현주 기자와 김지안 학생기자(서울상천초 4)가 지브리의 비밀 노트를 펼쳐 보기 위해 이 전시로 출동! 매표소에 들어서자 거대한 고양이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지. ‘이웃집 토토로’에 등장하는 고양이 버스는 토토로와 요괴들이 타고 다니는 버스. 고양이 버스를 탄 지안 학생기자가 외쳐. “자, 지브리 세계 속으로 떠나 볼까?”
아니메쥬와 지브리의 연결고리

전시장에 들어서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잡지들.
지안 학생기자가 고개를 갸웃거렸지. “왜 지브리가 안 나오고 일본 잡지가 나오죠?”
그건 바로 스튜디오 지브리의 시작이 ‘아니메쥬’라는 잡지와 연결됐기 때문. 그래서 전시 이름이 ‘아니메쥬와 지브리展(전)’인 거야. 아니메쥬는 1978년 일본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전문 잡지. 당시 어린이와 청소년은 물론 성인 애니메이션 팬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어. 매달 발행되는 이 잡지에는 애니메이션 관련 기사, 인터뷰, 작품 소개가 담긴 것과 더불어 만화도 연재되지. 지안 학생기자가 말했어. “내용도 재밌고, 만화도 많은 게 꼭 시사원정대 같아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스튜디오 지브리가 왜 종이 잡지인 아니메쥬와 연결되어 있을까? 그건 스즈키 토시오라는 사람 덕분. 그는 아니메쥬를 창간한 사람이자 훗날 스튜디오 지브리의 프로듀서가 되는 인물. 그는 재능 넘치는 청년시절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그의 작품을 아니메쥬에 여러 번 소개했어.
예를 들어볼까? 아니메쥬 *창간호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참여한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을 소개했어. 첫 극장 작품인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이 나왔을 때는 당시 인기 있던 SF 작품들을 제쳐두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을 특집으로 크게 다뤘지. 두 사람의 인연은 이어졌고 결국 손을 잡고 스튜디오 지브리를 만든 거야.
잡지사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고?

1970~1980년대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 붐이 일면서 팬들이 늘었어. 아니메쥬 편집부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지. “남들이 만든 작품을 잡지에 소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우리 손으로 직접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자!”
그런데 애니메이션을 만들려면 원작이 되는 만화가 있으면 더 좋겠지? 아니메쥬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부탁했어.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황폐해진 지구에서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소녀 나우시카의 모험을 그린 만화야. 나우시카는 ‘오무’라는 거대한 곤충과 이를 없애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하며 서로를 이해할 방법을 찾아 나가지.
이 만화를 바탕으로 아니메쥬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했어. 애니메이션 회사도 영화 회사도 아닌, 종이 잡지를 만들던 사람들이 말이야. 1984년에개봉된 이 애니메이션을 발판 삼아 스즈키 토시오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손잡고 스튜디오 지브리를 세웠지.
“근데 지브리가 무슨 뜻이에요?” 지안 학생기자가 물었어. ‘지브리’는 이탈리아어로 ‘사하라 사막에 부는 뜨거운 바람’. “우리 스튜디오도 애니메이션 업계에 바람을 일으키자”라는 소망을 담아 ‘지브리’로 지은 거야.
눈 깜빡할 사이, 그림은 수십 장

“이게 8초짜리 애니메이션 장면의 원고라고요?” 지안 학생기자가 발길을 멈추고 물었어. 눈길을 끈 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애니메이션 원고 뭉치. 대충 보면 다 똑같은 그림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씩 다름을 알 수 있지.
그는 8초 길이의 애니메이션 장면을 만들기 위해 원고 수십 장을 그렸어. 애니메이션에서 인물이 눈을 깜빡이거나 고개를 돌리는 아주 짧은 순간 있잖아? 그 장면 속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옷자락, 움직이는 얼굴 근육을 섬세하게 표현하기 위해 조금씩 다른 수십 장의 원고를 그린 거야. 그리고 그 원고들을 차례로 이어 붙이면 움직이는 장면이 완성되지.
당시에는 지금처럼 컴퓨터로 쉽게 수정하거나 효과를 넣을 수 있는 기술이 없었어. 그래서 인물의 머리카락 한 올, 손끝의 작은 떨림, 심지어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까지 전부 손으로 그려야 했지. 그림을 한 장 한 장 쌓아 올리다 보면 어느새 짧은 장면 하나가 완성되고 그게 모여 애니메이션 한 편이 되는 거야.
틀린 그림 찾기? 같은 그림 찾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원고를 놀라울 정도로 꼼꼼하게 그리는 걸로 유명해. 그의 원고를 보다보면 애니메이션 장면을 그대로 잘라 붙여 놓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 지안 학생기자도 “원고만 봐도 영화의 장면이 떠오른다”며 눈을 동그랗게 떴지.
실제로 전시장에는 만화 원고와 완성된 애니메이션 장면이 나란히 걸려 있어. 관람객들은 두 그림을 번갈아 보면서 틀린 그림 찾기라도 하듯 비교했는데, 모두가 감탄했지. 캐릭터의 표정 하나, 손끝의 움직임, 심지어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이나 하늘을 흐르는 구름까지 거의 똑같이 표현돼 있었거든.
다른 점을 찾아보라는 현주 기자의 말에 지안 학생기자는 “도저히 못 찾겠어요”라고 할 정도. 두 그림의 차이라면 색이 꼼꼼히 칠해져 있느냐 아니냐 정도뿐이었지. 그만큼 원고 자체가 이미 완성된 애니메이션처럼 살아 있었어. 한참 동안 그림 앞을 떠나지 못하던 지안 학생기자가 웃었어. “이건 틀린 그림 찾기가 아니라 같은 그림 찾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