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육

동아일보 사설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쓴 ‘눈높이 사설’이 월, 수, 금 실립니다. 사설 속 배경지식을 익히고 핵심 내용을 문단별로 정리하다보면 논리력과 독해력이 키워집니다.


옛 소련의 대통령을 지낼 당시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AP뉴시스 자료사진

[1] 1985년 3월 54세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지금의 러시아) 공산당 서기장(옛 소련의 최고 지도자)에 오르자 세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원고 없이 연설하고 부축 받지 않고 걷는 소련 지도자의 모습 자체가 신기했다. 소련은 이미 노쇠(늙어서 쇠약하고 기운이 없음)할 대로 노쇠한 제국이었다. 권력 핵심부터 늙고 병들었다. 불과 3년 사이에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로 이어지는 당서기장 3명을 포함해 지도부가 줄줄이 사망했다. 일찍이 고르비(고르바초프를 일컫는 다른 이름)는 지도부의 단체사진을 가리키며 “모두 조만간 밥숟가락을 놓을 분들 아닌가”라고 한탄(한숨을 쉬며 탄식함)했다. 안드로포프가 “늙은 말은 밭고랑을 망가뜨리지 않네”라고 타일러도 그는 “㉠작은 도토리가 강건한 상수리나무로 성장하죠”라며 굽히지 않았다.

[2] “계속 이렇게 살 순 없다. 변화가 있어야 한다.” 시골 출신의 젊은 야심가 고르비는 달랐다. 소련의 경제적 파탄(일이 잘 진행되지 못함)으로 이미 그 방향은 정해져 있었다. 고르비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통해 소련 체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했다. 하지만 결과는 사회주의(개인의 자유보다 사회 전체의 이익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상) 종주국(어떤 현상이 처음 시작한 나라) 소련의 해체였다. 한 번 풀린 권력의 실타래를 되감기는 불가능했다. 동구권 국가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갔고 막강했던 초강대국은 15개 나라로 분리됐다. 그로선 결코 의도하지 않았던 ‘제국의 파괴자’가 된 것이다. 국내적으로도 보수파의 쿠데타, 개혁파의 이반(사이가 벌어져 등지거나 저버림)에 따른 희생양이 되어 권좌(권력을 잡고 있는 자리)에 오른 지 7년도 안 돼 굴욕스럽게 물러나야 했다.

[3] 동서 *냉전을 종식(성하던 현상이 끝나거나 없어짐)시키고 핵전쟁의 공포를 밀어낸 평화주의자로서 세계인의 칭찬을 받는 고르비지만 국내에선 동구권을 서방에 넘기고 러시아의 몰락을 가져온 배신자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1996년 대선에 출마해 얻은 0.5%의 초라한 득표율은 국가적 조롱거리가 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선택을 결코 후회한 적이 없다고 했다. ‘다시 한 번 같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했겠느냐’는 질문에도 늘 이렇게 답하곤 했다. “뒤로 물러서서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똑같은 길을 갔을 것이다. 더욱 끈질기고 단호하게.”

[4] 20세기 후반 세계사의 가장 큰 전환점을 만든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 고르비가 지난달 30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죽은 사람의 나이) 91세. 실패한 비운의 개혁가 고르비의 몰락 이후 러시아 정치는 보리스 옐친 10년의 혼란과 좌절에 이어 새로운 정치적 괴물을 탄생시켰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소련 붕괴는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재앙”이라며 옛 소련의 부활을 꿈꾼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두고 고르비는 “인간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며 전쟁의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냉혈한 권력자 푸틴의 앞날은 여전히 진행형인 고르비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오늘은 동아일보 오피니언 면에 실린 칼럼을 사설 대신 싣습니다.

동아일보 9월 1일 자 이철희 논설위원 칼럼 정리​



 



▶에듀동아 장진희 기자 cjh062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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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바초프

  • 입력:2022.09.0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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