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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 문화로 일상을, 미래를 그리다.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
  • 변예주 기자

  • 입력:2022.06.24 13:00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은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것,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무다.”

 

국립중앙박물관(서울 용산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 어느 수집가의 초대’. 관람객이 전시장에 들어서자 실제 수집가의 집에 초대된 것처럼 은은한 차 향기가 물씬 풍겼어.

문화유산 수집은 우리의 의무라고 주장한 이 수집가의 정체는? 바로 고(·세상을 떠남) 이건희 회장. 삼성그룹의 회장으로서 삼성을 세계적인 일류 기업 반열에 올려놓은 그는 생전에 문화유산 수집가로도 유명했지.

그가 기업 경영 과정에서 내세운 초일류(일류 가운데서도 가장 으뜸)’ 철학은 문화재와 미술품 수집에도 오롯이 반영됐어. 생전 이건회 회장이 정확히 어떤 작품을 수집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어.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유족(남은 가족)들이 그의 수집품 23000여 점을 기증하기로 하면서 겸재 정선, 이중섭, 김환기, 클로드 모네, 파블로 피카소,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이 세상에 공개된 거야.

828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 선사시대 토기 작품부터 현대 회화까지 무려 295355점에 달하는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들을 만나볼 수 있어.

 

·사진 변예주 기자

 

[상식UP]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동아일보 자료사진

 

고 이건희 회장은 1987년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해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낸 기업인.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뒤를 이어 삼성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어. 그는 1993아내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일명 신경영 선언을 하며 현재의 삼성을 일궈냈지. 하나를 만들어도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연구개발에 매진한 결과 삼성전자는 반도체·스마트폰·TV 등의 분야에서 세계 일류 기업으로 자리 잡았어.

 


 모네가 사랑했던 정원과 수련

 

 

 
클로드 모네(1840~1926) ‘수련이 있는 연못’(1917~1920).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 수련이 있는 연못은 프랑스 출신 화가 클로드 모네가 그린 작품. 모네는 1883년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 정착해 연못이 있는 정원을 가꿨어. 정원은 나의 가장 아름다운 명작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정원을 사랑했지. 이 정원을 배경으로 250여 점의 수련 연작(하나의 주제로 여러 가지를 그린 그림)을 만들어.

이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공개됐는데, 모네의 수련 연작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아. 모네가 노화로 시력이 떨어진 후에 그린 것이라 세부적인 표현은 덜하지만 그의 수련 연작이 주는 평온함은 충분히 느낄 수 있지.

모네는 인상파의 창시자. 인상파는 같은 장소에서 순간순간 빛에 따라 변하는 풍경을 그렸던 화가들을 일컬어. 인상파의 명칭은 모네가 33세 때인 1873년에 선보인 인상: 해돋이(1872)’에서 유래됐지.

그림이 전시된 공간에선 인상파 음악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클로드 드뷔시(1862~1918)아마빛 머리의 소녀가 흘러나와. 관람객의 발아래에서 수련이 피어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바닥 공간엔 미디어 아트도 적용됐어. 그림과 음악을 감상하며 전시 공간에 서 있으면 마치 모네의 정원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걸?

 

한국인의 기상을 담은 황소

 

이중섭(1916~1956) ‘황소’(1953~1954)

 

노래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중 마지막 100번째 인물이 누굴까? 바로 한국인이 사랑하는 화가 중 한 명인 이중섭이야. 고 이건희 회장 역시 이중섭의 작품을 사랑했다고 알려져 있어. 그의 유족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미술품 총 1488점 중 이중섭의 작품만 104점에 달했을 정도. 한국 근대미술품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이자 이중섭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황소와 오랜 시간 실물을 볼 수 없었던 흰소’(1953~1954)도 포함됐지.

소는 인내와 끈기를 상징해. 이번에 전시된 황소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일상생활이 피폐해졌어도 묵묵히 앞을 향해 나아가는 한국인의 모습을 표현했어. 큰 눈을 가진 황소가 붉은 배경 속에서 입을 벌린 채 부르짖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떤 느낌이 들어?

 

백성의 말에 귀 기울인 실학자 정약용

 

정약용(1762~1836) ‘정효자전정부인전’(1814).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열두 살에 아버지가 병이 드니 효자는 이슬을 맞아가며 하늘에 기도하여 병이 낫게 하였다.’

어찌 엿을 씹어 먹여 주고 아이 반찬을 잘 챙겨주는 것만이 자애로운 어머니라 할 수 있겠는가.’

이번 전시에서 최초로 실물이 공개된 정효자전정부인전에 실린 내용이야. 특히 정부인전의 내용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됐지.

정효자전정부인전은 조선 후기 유학자이자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이 쓴 서예 작품. 정약용은 조선 후기 지방 관리들의 부정부패(바르지 못하고 타락함)를 비판하면서 관리들이 지켜야 할 지침을 담은 목민심서를 썼어. 거중기(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던 기계)를 발명하는 등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문, 즉 실학으로 백성들의 살림살이에 도움이 되고자 했지.

정효자전정부인전은 정약용이 한 백성의 부탁을 받고 쓴 작품으로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엿볼 수 있어. 정약용은 천주교를 믿는다는 혐의로 1801년에 지금의 전남 강진군으로 유배를 가게 됐어. 그 유배지에서 그는 정여주라는 인물을 만났지. 정여주는 정약용에게 “30세에 세상을 떠난 아들(정관일)의 효행(부모를 잘 섬기는 행실)을 기록해달라고 부탁했어. 아들의 효행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지만 자신은 글을 쓸 줄 몰랐기 때문. 정약용도 유배지에서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고 있던 터라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공감했고 대신 글을 써주었어. 이게 바로 정효자전이야.
남편을 잃고 홀로 자녀를 엄격하게 키우던 정여주의 며느리에 대한 이야기는 정부인전에 담았어.

두 작품 모두 백성의 소리에 귀 기울였던 실학자 정약용의 마음이 담겼고, 그의 문체도 감상할 수 있는 귀중한 작품!

 

  



▶에듀동아 변예주 기자 kuj01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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