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동 PICK 시사 TALK] 무령왕릉

공주 송산리 고분군 전경. 문화재청은 이곳의 명칭을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으로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은 1963년 1월 사적 제13호로 지정된 ‘공주 송산리 고분군’의 명칭을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으로 변경하겠다고 최근 밝혔어.
공주 송산리 고분군은 충북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백제시대 왕들의 고분(옛 무덤)들이 모여 있는 곳. 무덤 7기(基·무덤을 세는 단위) 중 1~6호분의 주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어. 유일하게 7호분만이 백제 제25대 왕인 무령왕(462~523)의 무덤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무령왕릉’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지.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무덤 중 유일하게 주인을 확인한 무덤이야.
1971년 처음 발견된 무령왕릉에서는 무덤의 주인을 알려주는 지석(숨진 사람의 이름과 탄생 및 사망 연월일 등을 기록해 무덤 앞에 묻는 돌), 금으로 만든 왕관 장식, 금귀걸이 등 4687점의 유물이 쏟아졌고, 이중 17점이 국보로 지정될 만큼 가치가 높아. 올해는 무령왕릉 발굴 50년이 되는 해. 무령왕릉과 그 주인인 무령왕을 알아보자!
○ 무령왕릉에선 보물이 와르르

무령왕릉 내부. 문화재청 제공
무령왕릉은 백제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이야. 당시 중국 지배층의 무덤 양식을 따라 만든 벽돌무덤이지. 무덤 입구부터 시신이 놓인 방까지 벽돌로 만들어진 통로로 연결돼 다른 무덤에 비해 도굴을 당하기 쉬운데도 발견 당시까지 전혀 훼손되지 않았어.
무령왕릉에선 수천 점의 유물이 나왔어. 왕과 왕비의 이름과 나이 등이 새겨진 지석부터 무덤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여겨진 석수(무덤 안에 놓아두는 돌로 된 동물상), 왕과 왕비의 왕관을 꾸미는 금제 장식, 청동거울, 금목걸이, 금귀걸이뿐 아니라 왕과 왕비가 편하게 눈을 감도록 도운 베개와 발 받침대까지. 하나의 무덤에서 이렇게 많은 국보가 나온 건 무령왕릉이 유일해! 백제의 뛰어난 문화를 보여주는 무령왕릉, ‘백제의 보물창고’로 불릴 만하지?
무령왕과 왕비의 시신이 담긴 관은 일본에서만 자라는 ‘금송’이라는 나무로 만들어졌어. 또 지석 위에는 당시 중국에서 사용하던 오수전이라는 동전 꾸러미가 놓여있었지. 이를 통해 백제가 당시 일본, 중국과 활발하게 교류한 사실도 알 수 있어!
○ 무령왕은 누구?

무령왕릉에서 나온 무령왕의 왕관 장식인 '무령왕릉 금제 관식'(국보 제154호)
무령왕릉의 주인은 무령왕이야. 무령왕이 왕이 되었던 501년 당시 백제는 고구려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기며 끊임없이 공격을 받은 힘든 시기였어. 무령왕은 왕이 되자마자 고구려의 기습을 막아내고 그들의 성을 공격하며 무너진 백제의 자존심을 다시 세우려 애썼지. 백성들의 삶도 꼼꼼히 돌보고자 했어. 홍수와 전염병, 가뭄으로 백성들이 굶주렸을 땐 나라의 곳간을 열어 식량을 나누어주었고,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 농사를 짓게 했지. 지방의 중요한 지역 22곳에 왕족을 파견해 직접 각 지방을 다스리게 하는 지방행정구역인 ‘22담로’를 설치하여 백성들이 편안히 살도록 했어.
왕의 권력을 강화해서 혼란스러웠던 백제를 안정시키고 신라와 중국, 일본과도 교류하여 백제의 국제적인 지위를 높였어.
▶에듀동아 최송이 기자 songi1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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