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입시
  • 제2의 자사고 될라… 의대와 ‘거리 두기’ 나선 영재학교, 왜?
  • 최유란 기자

  • 입력:2019.12.02 18:25

 


동아일보 자료사진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국제고와 달리 고교체제 개편의 ‘무풍지대’로 여겨졌던 영재학교에 변화가 생길 조짐이다. 교육부는 자사고와 외국어고‧국제고를 2025년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는 내용을 포함한 강도 높은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을 지난달 발표했다. 여기에는 기존 개편 대상으로 논의돼 온 자사고와 외국어고‧국제고 외에 영재학교와 과학고의 선발방식 등도 단계적으로 개선해나가겠다는 계획이 포함돼 관심을 모았다. 

이어 교육부가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을 발표한 지 약 한 달 만인 2일, 영재학교인 서울과학고가 신입생 선발제도 개선 및 이공계 진학지도 강화방안을 마련해 시행하겠다고 나섰다. 당장 내년 신입생부터 적용되는 이 변화가 전체 영재학교로 확산될지 주목된다.


○ “의대 지원하면 교육비 1500만원 환수”

서울과학고가 2일 내놓은 ‘2021학년도 서울과학고 선발제도 개선 및 이공계 진학지도 강화방안’은 적지 않은 변화를 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내년 입학하는 신입생부터 의학계열 대학 지원 시 3년간 지원되는 1500만원가량의 교육비와 장학금을 환수하며 교내대회 수상실적도 모두 취소하기로 한 것이다.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위해 설립된 영재학교는 기존에도 신입생 모집요강에 의대 지원 시 장학금을 반납하거나 교원의 추천서를 받을 수 없다는 유의사항을 내걸긴 했으나 이처럼 불이익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시행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이번 방안에는 진로진학교육을 강화해 의학계열로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다른 학교로의 전학을 권고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영재학교 신입생의 지역 편중과 입시 사교육 과열 현상 해소를 위한 방안도 눈에 띈다. 서울과학고는 지역인재 우선선발 제도를 확대해 기존 41개 단위지역(16개 시도 및 서울 25개 자치구)별로 1명 이내로 우선 선발하던 것을 2021학년도부터는 2명까지 우선 선발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신입생 입학전형에서 선행학습 효과와 사교육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열린 문항 출제를 확대하는 등 평가 내용과 방법을 개선하고 올해부터 평가 문항을 공개하기로 했다. 실제로 서울과학고는 이날 바로 2020학년도 입학전형 기출문항을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 자사고 향한 칼날, 영재학교도 겨눌라

서울과학고가 이날 발표한 조치는 신입생 모집에 작지 않은 파장을 미칠 수 있는 큰 변화다. 수도권에 위치한 데다 서울대를 비롯한 최상위권 대학 합격생을 많이 배출하는 곳으로 전국에서 손꼽는 서울과학고는 전체 8개 영재학교 중에서도 최상위에 위치한 학교다. 자연스럽게 자연계열 최상위권 학생들이 몰려 설립 취지와 달리 의학계열 진학자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영재학교이기도 했다.

실제로 국회 교육위원장을 맡고 있는 바른미래당 이찬열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아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6~2019학년도 서울과학고 졸업생 중 의학계열에 진학한 학생은 전체 졸업생 457명 중 104명으로, 5명 중 1명꼴이다. 다른 영재학교는 물론 다른 고교와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이렇다 보니 각종 불이익에도 의대 진학을 염두에 두고 서울과학고로 진학하는 학생도 적지 않았던 상황. 그러나 내년 신입생부터 의대 지원 시 불이익이 대폭 강화돼 시행됨에 따라 당장 오는 4~6일 진행되는 2020학년도 서울과학고 최종합격자 등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서울과학고가 이처럼 서울시교육청과 협의해 개선안을 마련한 데는 고교서열화 해소를 위한 칼날이 영재학교로 향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고교서열화 논란이 확산되며 자사고와 외국어고‧국제고가 일괄 폐지되는 강도 높은 조치가 내려진 가운데 일각에서는 고교서열화의 정점은 영재학교와 과학고로, 이들 학교 또한 함께 폐지해야 고교서열화를 해소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영재학교는 국가 차원의 과학기술 분야 우수 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돼 모두 국
공립으로 운영되며, 선행학습을 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적용받고 교육 지원도 전폭적이라는 점에서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집중포화를 받았다. 이에 교육부 또한 이번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에 기존 논의 대상에 없었던 영재학교를 포함한 것.

서울과학고 측도 이번 조치를 발표하며 “영재학교 신입생의 지역편중과 입시 사교육 과열 현상이 발생했고 영재학교 졸업생 상당수가 의학계열 대학에 진학한다는 문제점이 지적돼 마련한 것”이라며 “영재학교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 다른 영재학교도 뒤따를까… “실효성은 지켜봐야”

대표적 영재학교인 서울과학고가 정부가 추진하는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에 맞춰 나선 만큼 다른 영재학교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교육부가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에서 “영재학교와 과학고의 선발방식 등을 개선해 고입 단계의 사교육 유발 요인을 단계적으로 해소해 나갈 계획”이라고 명시한 만큼 다른 영재학교는 물론 과학고 또한 서울과학고의 뒤를 이어 개선 방향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교육계 일각에선 이러한 조치가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특히 의학계열 진학 시 불이익을 주는 것은 비록 강도나 구체성에서 차이가 있긴 하나 이전에도 있었던 조치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입시전문가는 “의학계열을 비롯한 명문대 진학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수요가 여전한 상황에서 고교 단계에서 이를 일시적으로 억제하기 위한 조치는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에듀동아 최유란 기자 cy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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