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
  • 고교학점제에 총선까지 ‘첩첩산중’인데… 정시 확대, 진짜 될까
  • 최유란 기자

  • 입력:2019.10.31 17:53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 우리나라 대입제도를 두고 유독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 국내 입시열이 특히 높은 상황에서 입시와 관련된 사회적 논란이 빚어질 때마다 교육당국이 기존 제도를 큰 폭으로 손질하는 것으로 대응해왔기 때문이다.

최근 이 표현이 재등장했다. 입시 불공정을 비판하는 여론이 높아지며 대통령이 직접 “대입제도 전반 재검토”를 주문했고 이에 교육부 또한 “제도 전반을 손질하겠다”고 나선 것. 특히 대통령이 “정시 비중 상향”이라는 구체적인 방향까지 제시한 이후, 교육부는 정시 확대는 논의 대상이 아니라던 기존의 입장까지 바꿨다. 치열한 공론화 과정과 유예 기간을 거쳐 정시 확대 비율을 30% 선으로 설정한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방안이 나온 지 불과 1년 만이다.

이르면 2022학년도부터 주요 대학을 대상으로 정시 비중을 40% 이상 확대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점쳐지는 가운데 교육부는 내달 중순쯤 구체적인 정시 확대 시기와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정시 확대’ 그다음이다. 정부의 의지에 따라 정시 확대 방안을 내달 확정한다 해도 실현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기 때문이다.


전국진학지도협의회와 전국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는 31일 서울 용산역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의 정시 상향 지침 철회를 촉구했다. 서울=뉴시스



○ “학종은 불공정” 그럼 수능은?

가장 큰 문제는 정시의 주요 전형요소인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둘러싼 공정성 시비다. 현재 정부의 정시 확대 처방은 고위공직자와 정치인 자녀의 잇따른 입시 비리 의혹으로 문제가 된 대입제도의 공정성 논란을 정면으로 겨냥한 해결책이 아니다. 그보단 상대적으로 문제가 덜해 보이는 차선책을 택한 것에 가깝다. 이 경우 수능의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면, 학종에서 수능으로 대상만 옮겨 또다시 같은 논란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제는 수능 역시 학종 이전부터 일부 계층이나 지역, 고교 출신에 유리하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는 점이다. 수능이 사교육 아래 일찍, 또 오래 준비할수록 고득점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사교육을 받기 좋은 환경의 교육특구나 고소득층 수험생에게 유리하다는 것. 학종과 방식만 다를 뿐 결국 일부 지역이나 계층, 고교 유형에 유리해 공정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정시 확대 가능성이 커진 직후 사교육 업체의 주가가 일제히 상승곡선을 그린 것 또한 이를 증명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근 연구결과도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민숙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과 이세웅 미국 미주리대 교육학과 조교수는 최근 열린 제14회 한국교육고용패널(KEEP) 학술대회에서 ‘대학의 수시전형은 교육대물림을 강화하는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부모의 교육수준에 따라 자녀의 교육 수준이나 월평균 임금이 높아지는 경향성은 확인됐으나, 특정 입학전형에서 이러한 상관관계가 더 강화되거나 약화되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어 “흔히 정시의 경우 수능이라는 동일한 기준으로 학생의 학력을 측정하기에 다양한 활동과 서류가 필요한 수시에 비해 부모의 영향력이 적게 작용할 것으로 생각하나 많은 연구에서 수능 역시 부모의 교육 수준 등과 긴밀한 관계임을 밝히고 있다”고도 했다.

육계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연이어 나왔다. 최근 열린 ‘한-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제교육컨퍼런스’에서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학종도 문제가 있지만 현재의 수능 또한 공정하지 않다”고 밝혔고,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도 같은 행사에서 “수능 같은 표준화된 평가가 공정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 미래 교육과 정면충돌… “교육 퇴행”

공교육 정상화는 물론 현재 도입됐거나 도입 예정인 교육과정 및 교육제도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 또한 정시 확대 적용의 장애물이다. 전국진학지도협의회와 전국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는 31일 오후 서울 용산역 회의실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의 정시 상향 지침이 “대선 공약과 1호 교육정책이었던 고교학점제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왜 이런 비판이 나오는 것일까. 현재 학교 현장에 적용되고 있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융합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학생 개개인의 창의력과 다양성을 강조한다. 여기에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도입돼 2025년 전체 고교에 적용될 예정인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해 이수하는 제도다. 이에 따라 학생들의 과목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평가 또한 기존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하기 위한 계획도 추진되고 있다.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해 기존의 획일화된 교육을 탈피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학교 현장에 차례로 적용되는 시점인 것.

러나 정시는 이 같은 최근 학교 현장의 흐름과 상충한다. 현행 수능이 기본적으로 오지선다형 암기식 시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대입제도 개편 논의 당시에도 N수생을 위한 ‘재도전 기회’ 측면에서 정시 확대가 다뤄졌으나, 학교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미래 교육을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무색해질 수 있다는 반대에 직면한 바 있다. 정시가 확대되면 재학생은 지금보다 수능에 집중해 대입 계획을 수립할 수밖에 없고, 상위권 대학 진학 수요가 높은 상황에서 학생들은 결국 자신의 적성이나 진로보단 대입에서의 유불리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학교 활동에 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와 함께 수능이 학교 교육과정 파행을 부추기고 공교육을 무력화시킨다는 점 역시 교육계가 정시 확대를 반대하면서 꾸준히 내놓는 비판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비롯한 71개 교육 관련 단체는 지난 28일 청와대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정시 확대는 우리 교육의 퇴행이며 공교육 정상화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다양성, 창의성이 중요한 미래 교육을 위해 정부는 정시 확대 방침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정치에 휘청, 여론에 휘청… 총선에선 무사할까

무엇보다 이번 ‘정시 확대’ 방침을 신뢰할 수 없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정치적 결정’이라는 시각 때문이다. 대통령이 최근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시 비중 상향’을 언급하기 바로 직전까지도 교육부 장관은 직접 “정시 확대는 없다”며 선을 긋고 학종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대입제도 개편을 논의해왔다. 여기에 정시 확대와 상충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 또한 현 정부가 핵심 교육공약으로 추진하던 사안이어서, 갑작스럽게 발표된 정시 확대 방침이 교육적 이해나 필요보다는 정치적 고려에 의한 것이라는 해석에 힘을 보탠다.

실제로 정시 확대 방침이 발표된 직후 양대 교원단체는 이번 정시 확대가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판을 일제히 쏟아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교육에 대한 정치적 개입”이라며 “대입제도는 정치적 요구에 떠밀려 추진할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으며 전교조 또한 “지지율에 눈이 멀어 교육 현장에 미칠 영향은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함의 극치”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에 정시 확대가 결정된다 해도 안정적으로 유지되기보다는 또다시 뒤엎어져 혼란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정시 확대 자체가 정치적 상황과 여론에 의한 결정인 만큼 급변하는 정치 국면과 여론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는 불안이 뒤따르는 것. 교총은 “차기 정권이 결정할 사안을 내년 총선용으로 밀어붙일 경우, 정권이 바뀌면 또 뒤집히는 혼란만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입시업계에 30년 이상 몸담으며 전문가로 활동해온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입시 제도는 초등학생 때부터 예측할 수 있도록 가능한 변화를 최소화하며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그간 우리나라 대입제도는 대부분 교육보다는 정치적 필요에 의해 달라져왔다”며 “특히 정권이 바뀌면 늘 큰 변화가 뒤따라와 입시 현장의 혼란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정시 확대 방침 또한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며 “이번 정시 확대 방침이 예측대로 2022학년도 대입부터 적용되면 대입 사전예고제에 따라 그 해엔 그대로 실시되겠으나 이후에는 총선, 대선 등을 거치며 여론 등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에듀동아 최유란 기자 cy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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