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육
  • [교단일기] ‘이래 봬도 일학년’, 교실서 화분 키우는 초등생들
  • 김수진 기자

  • 입력:2018.06.11 13:13
정가영 인천 부개초 교사의 교단일기

 

《에듀동아는 신학기를 맞아 ㈜시공미디어가 운영하는 초등 디지털 교육 플랫폼 ‘아이스크림’과 함께 현직 초등학교 교사들의 다양한 고민과 단상을 담은 ‘교단일기’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더 나은 수업을 위한 교과과정 연구와 학생 생활 지도 Tip부터 학부모 상담‧대응 노하우 등 초등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주제로 베테랑 교사들이 보고 느낀 점을 담백하게 담았습니다. 교단일기를 통해 학생, 학부모, 교사 등 교육계 내부의 소통이 더 활발해지기를 바랍니다. ‘교단일기’ 칼럼은 격주로 연재됩니다.》

 

 


동아일보 DB


 


며칠 전부터 우리 아이들은 등교시간에 조용히 교실에 들어오는 법이 없습니다. 

 

“선생님, 오늘이에요?”

 

“아니, 아직.”

 

“선생님, 며칠 남았어요?”

 

“음, 세 밤만 자면 돼.”

 

“세 밤이래!”

 

 

호기심 많은 우리 반 허준이는 교과서를 미리 살펴보며, 재미있어 보이는 활동을 찾아내는 것이 취미입니다. 그런 허준이가 봄 교과서를 받자마자 가장 마음에 드는 활동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씨앗 기르기’입니다. 덩달아 요 며칠 다른 아이들까지도 씨앗을 심는 일에 기대감을 잔뜩 심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기다리던 그 날. 먼저 여러 가지 씨앗의 생김새를 알아보고, 씨앗의 한살이도 배우고, 씨앗을 어떻게 하면 잘 가꿀 수 있을지 궁리도 해봅니다. 그러고 나서는 자기 화분에 붙여줄 이름표를 만들기로 합니다. 선생님이 만든 씨앗 이름표를 본보기로 내밀었더니 한 가지가 빠졌다며 다시 만들자고 합니다. 씨앗이 무거운 껍질을 밀고 나오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데, 그래서 ‘응원하는 말’을 꼭 적어 주어야 한답니다. 기특한 생각입니다. ‘응원하는 말’은 꼭 이름표 맨 아래쪽에 살뜰하게 적어서 씨앗이 잘 볼 수 있도록 흙 속에 잘 심어주기로 했습니다.

 

한편 씨앗 이름을 짓는 데에도 유행이 있습니다. 어느 해에는 각종 만화 캐릭터 이름, 또 다른 해에는 온갖 공룡 이름을 씨앗에 붙여주곤 합니다. 반에서 목소리 큰 한 녀석이 제 씨앗 이름을 자랑 삼아 먼저 외치면 그 이름을 따라간다는 작은 법칙 같은 것이 작용합니다. 

 

올해의 유행은 ‘깍두기’입니다. 작은 종이 접시에 솜을 깔고, 솜 위에 붉은색 무씨를 뿌리느라 바삐 움직이던 사이에 허준이가 선생님 책상에 있는 무씨 봉지를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정말 ‘그 무’가 맞느냐며 호들갑을 떠는 허준이 덕에 다른 아이들도 무씨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저 김씨, 이씨, 박씨 하듯이 무씨라서 그리 부르는 줄 알았는데 봉지에 그려진 무의 씨앗이라는 사실에 아이들은 적잖이 놀란 모양입니다. 그러더니 무를 잘 길러서 깍두기를 담가 먹겠다는 깜찍한 포부를 내비쳤습니다. 이렇게 올해의 유행은 깍두기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나만의 화분을 가지게 되었다는 즐거움과 더불어 어떤 무가 자라날까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매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가방도 던져놓기 전에 깍두기를 살피고,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예쁘고 튼튼하게 잘 자라라고 이야기 해 주기도 합니다. 키가 큰 내 새싹을 자랑하기보다 네 새싹이 내일은 더 잘 자랄 거라고 서로 응원을 해주고, 깍두기는 누구랑 모여서 어떻게 만들어 먹을까 함께 상상하기도 합니다. 그 작은 새싹을 곁에 두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지 모릅니다. 

 

식물을 가꾼다는 것은 작지만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일인가 봅니다. 하루하루 섬세하게 보살피고, 격려하는 말을 만들어내고, 열매의 모습을 상상하며 새싹에게 향했던 시선들이 어느새 친구들에게 전이되어 친구의 표정을 살피고, 배려하는 말을 전하고, 함께 이야기하며 상상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무씨가 무럭무럭 자라서 깍두기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무씨가 더디게 자라는 동안 아이들의 마음 속 무 씨앗은 이미 커다란 무 열매가 되었고, 잘 익은 깍두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 정가영 인천 부개초 교사

 

(정가영 인천 부개초 교사는 ‘아이스크림 쌤블로그’에 1학년 학급을 운영하며 겪는 여러 에피소드를 귀여운 웹툰으로 제작해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더욱 많은 고민과 수업 노하우가 담긴 정가영 교사의 교단일기는 ‘아이스크림 쌤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에듀동아 김수진 기자 genie8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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