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육
서울 계성초에서 글씨 연습을 위해 실시한 경필쓰기대회 모습. 서울 계성초 제공


서술형 평가 중요해지는데 글씨 교육은 줄어들어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3학년인 박모 군은 지난해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도저히 글씨를 알아볼 수 없어 일기를 읽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음과 모음이 일정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지 않고 겹쳐져 있었기 때문. 글씨의 흐름도 좌우 일직선이 아니라 위로 치우쳤다. 박 군의 어머니 이모 씨는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논술문 쓸 일이 많아질 텐데 그 때도 선생님이 글씨를 못 알아보면 안 된다’는 걱정에 박 군을 글씨 교정 학원에 보내고 있다. 

박 군처럼 글씨를 못 쓰는 ‘악필’ 초등생이 늘고 있다. 인천 서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반 아이들의 3분의 2가 글씨를 잘 못 쓴다”며 “다섯 명 중 한 명은 악필 수준”이라고 전했다.

악필 학생이 증가한 이유는 뭘까.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초등생이 급격이 늘고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스마트러닝이 활성화되면서 초등생들이 글씨를 직접 쓸 기회가 과거에 비해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스마트러닝’으로 공책 필기 안 해 

 

글씨를 정확하게 쓰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초등생이 많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예를 들어 ‘ㄷ’을 쓸 경우 위에서부터 선을 차례차례 긋는 게 아니라 ‘ㄴ’을 먼저 쓴 뒤 윗선을 더하는 식으로 글자의 획 순서를 잘못 쓰거나 글자의 중심을 잡지 못해 자음과 모음, 받침의 크기가 제각각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는 태어날 때부터 컴퓨터,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디지털 기기를 사용해온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요즘 초등생들이 손으로 글씨를 쓰기보단 자판을 두드리는 것에 더욱 익숙한 탓이다. 

초등 5학년 자녀를 둔 어머니 백모 씨는 “아이가 스마트폰으로는 장문도 단시간에 써서 보내지만 같은 내용을 종이에 글로 쓰라고 하면 힘들어한다”면서 “연필보다 스마트폰을 잡는 것에 더 익숙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유성영 참바른글씨 대표는 “글씨를 잘 쓰려면 연필을 쥐는 힘(악력)이 있어야 하는데 손가락으로 살짝 터치해 사용하는 스마트 기기에 익숙해지면 손힘이 약해져 글씨 쓰는 것을 힘들어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스마트러닝 열풍도 학생들의 악필을 양산해 내는 이유 중 하나. 학교 수업뿐 아니라 사교육에서도 스마트러닝이 확산되면서 학생들은 수업내용을 교과서나 공책에 필기하기보단 디지털 기기를 터치하며 관련 내용을 눈으로 확인하는 방식에 더욱 익숙해진 것.

조주한 서울 군자초등학교 교사는 “예전엔 ‘식물의 한 살이’ 단원을 공부할 때 식물이 싹트고 자라 씨를 맺는 과정을 교과서에 그림으로 그리거나 글로 적었다”면서 “하지만 요즘엔 3D콘텐츠를 통해 식물의 일생을 입체적이고 실감나게 눈으로 보며 학습한다”고 말했다. 

활동 중심의 수업이 많아진 것도 아이들의 글씨에 영향을 미쳤다.

민은주 인천신석초등학교 교사는 “요즘 수업방식은 멀티미디어 자료를 보고 모둠별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거나 놀이나 체험학습을 통해 교과 과정을 학습하는 것이므로 필기활동이 줄어들었다”고 답했다. 그나마 초등 저학년 때는 정규 교과시간에 받아쓰기 수업을 하지만 고학년이 되면 활동 중심의 수업을 위해 교과서 내용을 요약한 유인물을 나눠주는 경우가 많아 학생이 필기할 기회 자체가 크게 줄어든다는 것.

 

 

악필이 고민인 초등생이 글씨 교정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에 쓴 글. 참바른글씨 제공



글씨 중요성 오히려 커져

글씨 쓰기 연습이 잘 되어 있지 않다 보니 학생들도 손으로 글을 작성하는 것보단 컴퓨터로 하기를 선호한다.

조기성 서울 계성초등학교 교사는 “학생들에게 글씨 연습을 시키기 위해 매일 일기를 작성하라고 했더니 컴퓨터로 일기를 작성하게 해달라는 학생도 있었다”고 말했다. 

고학년이 되면 글씨가 굳어져 교정이 어렵기 때문에 초등 저학년 담임선생님의 경우 조 교사처럼 별도의 숙제를 내주거나 방과 후 학습을 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방과 후 학습에 대한 학부모들의 시선이 늘 고운 것만은 아니다. 글씨 공부보다는 영어, 수학 중심의 교과 공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학교 수업이 끝난 후 자녀를 곧바로 학원에 보내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스토링텔링 수학이 도입되면서 수학 과목에서 서술형 문제의 비중이 커지는 등 논술형 문제가 많이 출제되고 있다는 점. 실제로 글씨를 쓸 수 있는 환경은 줄어들었지만 글씨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자녀를 글씨 교정 학원에 보내는 학부모도 늘고 있다. 서울 강남구의 청소년 수련관 초등악필교정수업은 늘 방학특강이 꽉 찰 정도. 전문 교사에게 일대일로 글씨 교정을 받는 초등생도 있다. 일대일 글씨 교정 강습을 진행하는 김주연 강사는 “학생이 연필은 바르게 잡는지, 손힘이 너무 약하진 않은지, 글씨 쓰는 자세는 바른지 등을 일대일로 코칭한다”고 말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자녀의 손힘을 길러주기 위해 찰흙놀이나 종이접기, 철봉 등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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